24년 7월의 잡담
1.
수술 일주일 후에 조직검사와 영상검사 결과를 들으러 운전을 하며 가다가
늘상 그랬던 것처럼 머리속에서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상상했다.
좋은 시나리오는 당연히 별 생각할게 없으니 순식간에 끝나고,
나쁜 시나리오는 오래가니, 사실상 내 머리 속은 나쁜 시나리오에 대한 상상만 하는 셈이다.
림프전이, 간전이 등을 상상하다가 눈물이 찔끔났고
뇌전이를 상상하니 눈물이 줄줄 흘렀다.
사망선고를 받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한참을 울다가 내가 뱉은 유일한 한 마디는 상상조차 해본적 없는 말이었다.
'하느님. 제가 열심히 안 살았습니까?'
그리고는 계속 울면서 운전을 했다.
아마 이게 내 본질일 것이다.
그리고 내 감정과 상상과는 별개로
기대는 당연히 이때까지의 경과에 합당한 기대를 했고
실제 결과도 이때까지의 경과에 합당한 결과였다.
수술로만 끝났다.
2.
meiryo 폰트를 몇년간 쓰다가 나눔고딕으로 바꿨다.
이유는.. 얼마전 윈도우 업데이트 후에 일본어나 영어가 메인인 폰트를 쓰면
한글만 쓰거나 영어만, 일본어만 쓰면 괜찮은데, 혼용하면 폰트가 뒤섞인다.
그런 모습을 보는게 너무나 괴로운, 이상한 마음을 가진 나라서, 바꿀 수 밖에 없었다.
처음 일주일쯤 어색했는데 이제 괜찮은거 같다.
3.
은재의 감정을 이해할 사람은 세상에 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려고 한다.
은재의 마음은 뿌리가 pathology이다.
은재의 physiology=pathology이다.
은재가 기쁨을 느끼는 방식은 이 세상의 어떤 일도 할 수 없게 만든다.
은재가 애정을 느끼는 방식은 이 세상의 어떤 일반인도 가까이 할 수 없게 만든다.
결국 은재가 일을 하려면 기쁨을 느끼지 않아야하고
사람을 가까이 하려면 애정을 느끼지 않아야 한다.
내가 아는 최고의 미덕은, 잘못은 혼내고 잘하면 칭찬하라는 것이다.
잘 되면 그대로 하고 잘 안 되면 바꾸라는 것이다.
tit for tat 전략이다.
하지만 이것은 정상적인 마음에게나 통하는 전략이다.
이것은 기억력이 없거나 상대를 구분하지 못 하거나
뭐가 이익인지 뭐가 손해인지 판단하지 못 하거나
뭐가 처벌이고 뭐가 보상인지를 판단하지 못 하는 마음을 위한 전략이 아니다.
은재가 그런 기본적인 인간 마음의 기능들을 수행할 수 있는건지 나는 회의적이다.
그러면 다른 무슨 좋은 전략이 있는가?
모르겠다.
나는 은재의 뿌리를 긍정해주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것을 부정하며 가르쳐야 하는가?
모르겠다.